오래간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을 읽었습니다
대학생 때 '개미'라는 소설을 읽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말도 글도 잘 쓴다는 평가도 많았기에 작가라는 직업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정도의 것으로 여겼더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모르는 풋내기의 거만함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그랬던 저에게 작가라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 아니며 하나의 작품을 위해 방대한 자료와 지식을 조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지각하게 해 주었던 작품이 바로 '개미'였습니다.
그 후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베르나르의 소설을 읽어왔습니다만 읽을수록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대부분의 소설을 관통하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과 조롱입니다.
특히 파피용이라는 소설을 흥미롭게 읽다가 종반에 가서는 '이 사람은 또 이러네' 하고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때 부터 신앙생활을 했던 저에겐 이러한 그의 기조들이 싸울 생각이 없는 상대방을 굳이 돌아서게 하면서 시비를 거는 일종의 콤플렉스 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역시 그의 소설 대부분에 등장하는 성적 묘사입니다.
물론 이 부분은 작가와 저의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글의 전개상 꼭 필요한 것도 아닌 것 같은 장면에서 반복되는 이성 간의 관계 묘사는 좀 지나치다 생각된 적이 많았습니다.
그의 창의성과 방대한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일반적은 통념과 다른 각도에서 풀어주는 역사와 인물의 이야기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의 두 가지 사실로 인해 소설 자체를 다소 꺼리는 그런 관계, 그것이 바로 제가 베르나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서두가 길었군요
작품 얘기를 하자면 정말 간만에 그의 소설을 읽었고 모니카와 니콜, 두 천재 여자 아이의 체스 이야기로 시작하는 줄거리는 흥미로웠습니다.
모니카의 엄마와 니콜의 아빠로 등장인물이 확대되고 그들이 가진 세계관이 소개되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체스 천재들의 이야기에서 이데올로기 충돌의 사건으로 확대됩니다.
부모들이 무대뒤로 퇴장하면서 중요한 순간과 결정마다 다른 형태와 위치에서 만나게 되는 두 소녀의 성장기가 펼쳐지며 세계사, 특히 근현대사에 발생한 다양한 사건들이 재조명됩니다.
모니카와 니콜, 두 천재가 체스판에서 말을 움직이듯 세계정세를 쥐락펴락 하면서 만들어낸 다양한 사건들은 그 상당수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기에 몰입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히어로화 되가는 등장인문들과 너문 많은 사건에 거의 완벽한 설계로 승패를 주고받는 두 주인공으로 인해 약간 루즈해진 경향이 있고 뒤로 갈수록 사건의 나열 같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다소 아쉬웠으나 몰입도는 좋았습니다.
중간쯤 읽어 나가면 누구나 마지막 장면은 두 여인의 마지막 체스대결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전개였습니다.
하지만 과연 끝까지 어떻게 긴장감을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예상은 절반정도만 맞았던 것 같습니다.
최근 읽었던 베르나르의 소설을 완독 못한 경험이 쌓여가고 있던 시기에 빼어난 수작이라 할 수는 없어도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짧은 호흡으로 읽어 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전 보단 다소 심플해지고 힘도 좀 뺀 느낌이어서 부담도 덜 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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